나는 절에는 가지만 부처님께 절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절에는 가지만 부처님께 절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른 종교의 신자이기 때문에 절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라도 엄연히 불교 신자입니다.부처님 보기가 미안해서 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절에 들어서면 처마 끝의 풍경 소리나 은은하게 들려 오는 염불 소리, 그리고 숲에서 불어 오는 바람 소리에도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무언가 소원을 빌어 봅니다. 법당에 들어 가서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빌어 보기가 무언가 좀 숙스럽다고 생각이 들면 멀리서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보고 두손 모아 기도를 합니다.
아주 유명한 큰 절이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절이나 절에 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손히 절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모습은 무엇인가 간절히 소원을 비는 모습으로 보이지요.
절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겠지요. 그 중에는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을 위하여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잘못에 대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108배에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절을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절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하는 뒷모습은 모두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부처님께 절을 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집니다. 아마 실제로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 지기를 빌면서 절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절에는 가지만 부처님께 절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절을 하는 뒷모습도 다른 사람에게는 나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절을 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질테니까요.
중생들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부처님은 자기에게 소원을 비는 중생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기도를 한답니다.
그래서 중생은 가끔씩 행복하지만 부처님은 항상 행복하답니다.
이런 부처님께 내가 어떻게 절을 하겠습니까, 뻔뻔스럽게.
절에서 신도끼리나 또는 스님과 인사를 할 때 합장하여 "성불 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합니다. 부처님이 되라는 뜻의 인사입니다. 불교는 곧 부처교입니다. 부처는 깨달은 사람을 말합니다. "성불 하십시오"라는 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자기 자신 또한 부처가 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행복의 길로 이끌어 주는 부처가 되라는 뜻이지요.
많은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제쳐 두고 자기의 소원만 빌기가 바쁩니다. 수능 시험때만 되면 전국의 절은 학부모들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자기의 자식들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그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줄려만 부처님께서는 얼마나 바쁘실까? 자기의 소원만 빌지 말고 부처님을 도와서 부처님께 기도하는 그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면 어떨까? 그러면 부처님께서도 한결 힘이 덜 드실텐데.
이것이 내가 절에는 가지만 부처님께 절을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내가 만약에 부처님께 절을 한다면 나도 나의 소원이 이루지게 하여 달라고 빌겠지요. 물론 나와 나의 가족이 행복하여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 속에 내가 모르고 있는 아픔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조금만 자리잡고 있어도 부처님 보기가 미안하지 않을 것인데....
그래서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와 나의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본 일이 거의 없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나누어 본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이 타면 애써 외면하고 혹시나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나 하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불우 이웃 돕기도 진심으로 해 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단체로 어쩔 수 없이 해 본 기억 외에는 나 스스로 해 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 먹을 돈은 있어도.
이런 내가 어찌 부처님께 절을 하겠습니까? 그 많은 중생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하시면서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얼굴 가득이 자비스런 미소를 띠고 계시는 부처님 보기가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절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는 부처님께 절을 할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도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이 작지만 가슴 한 켠에 자리잡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절을 하며 소원을 빌어 볼 것입니다.
- 김 상 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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