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고향,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2년 추석도 또한 지나갔다. 모두가 기다렸던 4일간의 추석 연휴가 끝나고 어제 그저께 일상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벌써 또 주말이다.
추석이 오기 전에는 기다림과 만남의 기대 그리고 또 모처럼 찾아오는 가족들을 어떻게 대접할까 하는 걱정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추석을 기다린다. 기다린다고 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만남의 날이 다가올 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먼 곳에서 아들, 딸 그리고 손주들이 찾아와서 반가움에 밤이 어떻게 지나간 줄도 모르고 추석 날 아침이 되어 추석 차례를 지낸다. 부모들은 멀리서 온 자식들이 피곤할까 봐 살며시 먼저 일어나서 차례상을 다 차린 다음 자식들과 손주들을 조심스럽게 깨운다.
추석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 산소에 성묘를 다녀와서는 어떤 자식들은 벌써 돌아갈 준비를 한다. 너무나 짧은 만남에 부모들은 그저 서운하기만 하다. 무엇이 그리 다들 바쁜지 연휴가 4일이나 된다 하는데 하루라도 더 있으면 좋으련만 바쁘다면서 굳이 갈 채비를 재촉하는 자식들이 괘씸스럽기까지 한다. 그래도 연휴 마지막 날 자기 일상의 장소로 돌아가는 자식들을 위안 삼아 본다.
현대를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하였던가?
지금의 늙은 부모들이 젊었을 때 객지의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명절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갈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물질적으로 너무나 풍요로운데 명절이 끝나면 무언가 부족하고 아쉬우며 가족 간의 따뜻한 온기도 옛날 자신들이 젊음 시절에 비하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허전하기만 하다.
요즘의 추석을 맞는 고향이 옛날보다는 쓸쓸함에 대한 김택근 시인. 작가님의 "추석과 고향,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글을 모셔 와 봤다.
추석과 고향, 그 쓸쓸함에 대하여
/김택근 시인·작가
추석이 돌아온다. 나라 안팎의 소식들이 암울해도, 태풍이 올라와도 달은 차오른다. 고운 옷 입고 등 굽은 고향을 찾아가는 풍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벌초를 하고 멀끔해진 무덤 앞에서 절을 올리면 불효를 용서받은 느낌이 들었다. 가을볕은 또 얼마나 인자한가. 고향에서 햇살을 들이켜면 추억마저 살이 올랐다. 종일 새를 쫓다 지친 허수아비가 잠이 들면 노을이 시나브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고요하게 출렁이는 들녘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추석이 풍요롭기에 그 넉넉함이 더 서러운 이들이 있었다. 슬픈 사람은 더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웠다. 삶이 곤궁하면 밤늦게 마을에 들었다가 새벽녘에 떠났다. 아예 마을에 들르지 않고 성묘만을 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 무덤 앞에 놓인 술병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음을 알았다. 자식이 오지 않는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발소리를 죽여야 했다. 그래서 객지의 자식들은 죽을힘을 다해 고향을 찾아갔다.
1974년 9월 28일 ‘용산역 귀성객 압사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귀성객으로 그 참혹한 순간들을 지켜봤다. 그날 밤 용산역 광장은 귀성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동차가 드물던 시절이라 고향에 가려면 열차와 고속버스에 올라야 했다. 개찰이 시작되자 귀성객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갔다. 고향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너도나도 열차를 타려 구름다리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사람과 사람이 엉켜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계단에서 사람이 쓰러져 사람 발에 밟혔다.
계단에 쓰러진 사람들. 신음 소리만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시신과 부상자들이 실려 가고 선물 보따리와 신발짝, 가방이 흩어져 있었다. 저 물건들의 임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어디선가 부모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실제로 구름다리 밑에선 음산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들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몸이 떨릴 때가 있다.
당시 언론은 4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다쳤으며 ‘사상자는 여공이나 식모’라고 보도했다. 여공이나 식모는 지금은 사라진 호칭이지만 한 시대를 적신 직업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도시화 바람에 젊은이들은 고향을 등져야 했다. 돈 벌러 도시로 몰려갔다. 서울에서 가장 쉽게, 가장 많이 들어간 곳이 공장이었다. 거의가 단순 노무직이었다. 좀 어리다 싶으면 부잣집 식모로 들어갔다. 타향살이는 고달팠다. 그럴수록 고향이 그리웠다. 허리가 부서지도록 일하고 늦은 밤 쪽방에서 잠을 청했다. 머리맡의 라디오에서는 온통 고향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향역, 고향길, 고향 생각, 고향이 좋아, 너와 나의 고향, 머나먼 고향….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아주 먼 나라 얘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추석은 명절 이상의 명절이었다. 객지의 설움은 쏟아내고 고향의 정은 들이마셨다. 어머니 품속에서 또는 성묘를 하며 흘리는 눈물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여공과 식모들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이를 물었다. 어떻게든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마침내 서러운 땅에서 여공과 식모를 몰아냈다.
해마다 추석이 쪼그라들고 있다. 귀성객이 줄고 있다. 여행지에서 차례를 지내고 심지어 ‘인터넷 성묘’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바이러스 역병의 창궐로 고향은 더 멀어졌다. 이제 ‘귀성전쟁’이란 말이 신문과 방송에서 사라졌다. 기차역보다 공항이 붐비고 있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찾았던 일은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은 대중음악 노랫말에서도 고향이란 말은 찾기 어렵다. 고향의 어머니도 하나둘 세상을 뜨고, 고향은 마르고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와 도시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도 늙어가고 있다.
젊은이들도 둥근 달을 보면서 고향 생각을 할까. 달 속에 어머니가 나타날까. 요즘 젊은이들은 주어진 삶이 버겁다고 아우성이다. 정보화사회의 원자재인 지식과 정보는 순식간에 노화해버리고 안전한 직업은 찾기 어려운 시대이다. 언제든 떠나고 어디든 가야 하는 신(新) 유목민 사회에서 그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그러고 보면 엄청난 물결이 지구촌, 나라, 마을, 가정을 덮치고 있다. 부모들은 도시화 물결에 타향으로 내몰렸고, 그 자식들은 알 수 없는 물결에 어디론가 떠밀려가고 있다. 그들이 내릴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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