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富者는 甘盡 又 甘來이요, 貧者는 苦盡 又 苦來이로다.

▣ 世上萬事/♠ 블로그 주인장의 생각

by 金相烈 2019. 6. 13. 20:01

본문

富者는 甘盡 又 甘來이요, 貧者는 苦盡 又 苦來이로다.


苦盡甘來(고진감래)

苦盡甘來(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을 이르는 말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사자성어를 많이 인용하였다. 지금의 현실은 어렵고 힘이 들어도 참고 견디면 즐거움이 온다고 기대를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이며, 가슴에도 별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러면 왜 이 사자성어가 현대 사회에서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가슴에 별로 와닿지 않을까? 다음 몇몇 말들과 같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까 한다.


첫째. 3대 부자 없고, 3대 거지 없다는 말을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많이 들었다.

과거에 가난한 집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흔히 사용하던 말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재물관리 잘못하면 망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만약 나의 대에서 안되면 자식의 또는 그 밑의 대에서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苦盡甘來(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와 비슷한 뜻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둘 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는 말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이 말이 요즘은 틀렸다고 한다.

요즘은 "한번 부자는 자손 대대로 부자이고, 한번 거지는 자손 대대로 거지다."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그럼으로 해서 자연히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렇게 부의 양극화가 심화됨으로 해서 대부분의 저소득층은 적은 수입으로 일상적인 생활비 지출 후 여유분이 없으니 저축이나 재산증식을 위한 재투자를 하기가 힘들어 가난의 연속 그리고 가난을 본의 아니게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지만, 고소득층은 일상적인 지출을 하고도 여유분이 많아 저축 또는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어 이중으로 고수입이 보장되어 본인은 물론 자식을 비롯한 후손들까지 풍요로움이 세습되는 것이다.


개천에 용 난다.

주어진 모든 모든 환경이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등 성공을 하였을 때 하는 말이었다. 이 말 역시 요즘은 맞지 않는 말이다. 요즘은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는 일단 좋은 환경의 도시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도시로 나간다고 자식들의 교육이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막대한 교육비가 투자되어야 한다.요즘 교육은 금전적 투자를 하지 않으면 교육 자체가 안된다. 과거에는 공부를 잘하는 첫째 조건이 머리가 좋고 그다음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첫째가 경제력이다.


교육도 경제력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양질의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고액의 소득을 얻는다. 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므로 또 그의 자식들도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자연히 부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경제력이 없으면 양질의 교육은 엄두도 못 낸다.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저임금 그리고 악조건의 직장으로 취업을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자식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또 한 자연히 빈곤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를 떠들썩 하게 했던 모 대형 항공사의 딸들과, 그리고 화력발전소나 지하철 작업 현장에서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한 협력업체 계약직 근로자들은 인간으로서 타고난 본래의 능력은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는 부자 아버지 만나 새파란 젊은 나이에 부사장 되고 전무 되었지만 누구는 가난한 부모 두어 좋은 교육 못 받고 좋은 직장 못 들어가고 협력업체의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작업하다가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었다.


용은 큰 강에서 나오지 개천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 개천에서는 피라미나 송사리들이나 나오지. 이 피라미나 송사리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언제 거대한 포식자의 먹이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의 원인 중에서 가난의 대물림이 두려워서 자식 낳기를 망설이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육아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준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스럽다 자식에게 죄스럽기 때문인 것이다. 가난은 자기 대에서 끝을 내야지 자식들에게까지 가난을 물려 줄 수 없다는 마음이 자식 낳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도 잘 살수 있다는, 그리고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의 뜻을 가슴에 품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자꾸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현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회적 제도의 불합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의 원인이 있다  하여도 그 근본적인 원인의 일부분은 본인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인간이 삶은 영위하면서 경제적인 충족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노력이라 할 수 있겠고 사회적으로는 권리이며 의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구든지 권리이며 의무인 경제적인 충족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 이 노력에는 상당한 고통도 뒤따른다. 그래서 인내도 필요하다. 충족한 삶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하여 고통을 참아가면서 노력한다.

苦盡甘來(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 깊은 의미와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서양의 교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권리이자 의무인 충족한 삶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여도 쉽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 나기가 힘든 것은 지금의 이 자본주의 시대는 경쟁의 시대다. 특히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경쟁은 요즘 흔히 사용하는 말로 게임이 안된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인 것이다. 그리고 또 있는 자들의 부는 커다란 블랙홀 같아 주위의 모든 부, 하물며 가난한 자들의 조그마한 부까지 다 빨아들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모든 것이 열악한 영세 서민들은 그들의 염원인 경제력을 비롯하여 삶의 질을 상승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일부는 오히려 하락을 한다. 결국 소득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도 이러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능성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현실은 苦盡甘來(고진감래)처럼 희망적이지 않고 "富者는 甘盡 又 甘來이요, 貧者는 苦盡 又 苦來이로다."이다. 즉 부자는 단 것을 다 먹고 나면 또 단것이 오고 가난한 자는 쓴 것을 다 먹고 나면 또 쓴 것이 온다는 것이다. 한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이고 한번 거지는 영원항 거지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가 없다.


부유한 것이든 가난한 것이든 첫째는 모든 원인 및 결과 모두 당사자 본인의 책임이지만 사회적 또는 국가적 제도에 문제점이 있을 때는 사회나 국가가 제도를 보완하여 국민 모두가 노력한 만큼의 소득으로 더 이상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되겠다. 더 이상 가난의 대물림이 두려워 자식 낳기까지 망설여야 하는 그런 사회가 되지 말아야겠다. 이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富者는 甘盡 又 甘來이요, 貧者는 苦盡 又 苦來이로다." 아닌 苦盡甘來(고진감래) 또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사자성어나 서양 격언의 의미를 가슴에 안고 모든 국민이 열심히 노력하여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수확하여 더 이상의 빈부 격차가 심회 되는 그런 사회가 없었으면 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