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난다"
이 말은 어느 가수가 부른 '홍시'라는 대중가요의 노래 말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은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고 비가 올듯 말듯 내릴 듯 말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내리면 며칠씩 계속 내리는 장마철이면 엄마가 쪄 주시던 개떡이 생각이 난다.
엄마가 쪄 주시던 개떡이 생각나는 것은 그 개떡이 먹고 싶어서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고 엄마의 그 애잔한 모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이미 돌아가신지 강산이 두 번 넘게 세월이 흘러갔지만 어릴 때 개떡을 쪄 주시던 모습이 보고 싶고 엄마의 정이 그리워진다.
요즘같이 모든 물건이 풍족하고 모든 것이 아쉽거나 부족함이 없는 지금의 어린이들과는 달리 필자의 어린 시절인 1960년대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하던 시절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주위의 산과 들 그리고 냇가는 모든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그러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천방지축 뛰어놀던 어린이들에게는 형벌이 따로 없었다. 요즘같이 집집마다 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은 좁고 형제는 많아 비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애들 때문에 집은 요란스럽고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비 때문에 집에 갇혀 있는 애들은 모두가 심심하고 지루하였다. 입 또한 심심하였다. 날이 좋은 날에는 집 안팎을 뒤져 고물이라도 찾아서 가끔 지나가는 엿 장사의 엿이라도 바꾸어 먹을 수 있지만 비 오는 날은 엿장사도 오지 않는다.
그러면 평소에 농사일로 피곤한 몸을 비를 핑계로 낮잠을 주무시는 엄마를 집적거린다. 그러면 엄마는 눈치를 채고 피곤한 몸을 일어 켜 고방을 뒤져서 무엇을 가지고 나오신다. 엄마가 들고 나오시는 흰 자루 안에 종이 포대를 꺼내신다. 종이포대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당갈등겨였다.
당갈들겨는 보리를 도정할 때 겉껍질을 벗겨내고 좀 더 부드러운 보리쌀을 만들기 위하여 보리의 속껍질을 벗겨낸 보드라운 보리등겨다. 1960년대는 밀가루도 귀한 시대로 시골에서는 그 밀가루 대신 당갈등겨로 떡을 만들어 먹곤 하였다, 그 떡이 바로 개떡이었다. 요즘은 개도 먹지 않을 개떡이다.
엄마는 그 당갈등겨를 반죽을 하신다. 봄에 심어서 초여름에 수확한 양대콩을 함께 넣고 설탕이 귀한 시대라 설탕 대신 사카린 몇 알을 물에 녹여서 그 사카린 녹인 물을 당갈등겨 반죽에 부어 고루고루 석이도록 반죽하셨다. 사카린은 당도가 너무 높아 물에 덜 녹거나 고루고루 반죽에 스며들지 않고 한쪽으로 몰리면 단맛이 너무 높아 쓴맛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당갈등겨 반죽을 솥 안에 넣고 불을 지펴 개떡을 만든다. 그 당시 시골은 모든 음식은 땔나무로 조리를 하였다. 긴 장마로 모든 땔감 나무들이 축축하여 불에 잘 타지 않아 연기가 엄청 나왔다. 엄마는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어린 자식들을 위하여 개떡을 만드시고 떡 익는 냄새가 조금씩 날 무렵부터 부엌에 가득 찬 연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애들은 부얶문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
드디어 깨떡이 완성되었다. 엄마께서 솥뚜껑을 열고 삼베 보를 걷어 낸 다음 칼로 가로 세로 칼질을 하여 요즘 거리에서 파는 술빵같이 큼직큼직하게 자르신다.
그리고 군침을 흘리며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양대콩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거무스레한 개떡을 한 개씩 주신다. 애들은 마루에 앉아 너무나 맛있게 개떡을 먹는다. 그 거무스레한 개떡을 그렇게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개떡을 맛있게 먹는 자식들을 바라보시는 엄마의 입가는 미소를 가득 머금어시며 행복해하신다. 그러나 행복한 미소를 띠시지만 무엇인가 아쉬워하며 약간은 슬픈듯한 모습도 보이신다. 아마 가난한 살림 때문에 자식들에게 좀 더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만들어 주지 못한 부모로서의 아쉬움과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애들이 개떡을 맛있게 먹는 동안 비는 그치고 하늘에는 구름만 가득하였고 벌써 골목에는 동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들린다. 마루에 앉아 개떡을 먹든 아이들도 엄마에게 개떡을 하나 더 받아 쏜살같이 밖으로 나간다.
살기가 다 고만고만한 이웃들이라 다른 집 애들도 개떡이나 아직 익지 않는 풋감 같은 것들을 가지고 나와 서로 나누어 먹곤 하는 것이 그 당시의 풍경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강산이 네 번 바뀌었고 어머니 돌아가신 지 강산이 두 번 바뀌었지만 장마철 비가 오면 부모님 생각이 문득문득 나고 어머니의 개떡 만들어 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거무스레한 개떡을 맛있게 먹는 자식들을 보며 행복해하시는 모습, 그리고 흐뭇해하시는 모습 한편에는 약간은 슬픈듯한 모습이 겹쳐 보이곤 한다. 아마 자식들에게 좀 더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마철 비 오는 날 개떡을 만들어 주시던 울어 마가 생각이 난다.
그러나 개떡은 먹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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